•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페이스북 바로가기 트위터 바로가기
  • 중국

  • 국제/국내

  • 특집

  • 기획

  • 연재

  • 미디어/방송

  • 션윈예술단

  • 참여마당

  • 전체기사

검색어 입력

‘투시 인민일보’<1> 인민일보란 무엇인가

관리자  |  2006-03-07
인쇄하기-새창

오늘날, 우리가 역사의 공정하고 양심적인 각도에 입각하여 중공 중앙의 기관지 ‘인민일보’를 살펴보면, 56년 동안 ‘인민일보’의 기만과 거짓말로 인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수만 명의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인민일보’로 인해 초래된 중국인들의 도덕성 타락, 양심 상실, 당(黨) 문화 사유 모델의 심각한 결과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인민일보’의 음험하고 악랄한 학살로 인해 초래된 중국 민족의 우수한 전통문화가 거의 파괴된 국면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으며, 부모 세대, 우리 세대 및 다음 세대의 심령(心靈)에 심각한 해악을 끼친 중공의 ‘대변자’ ‘인민일보’가 대표하는 전체 중공의 사악한 거짓 선전체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중공은 1949년 정권 탈취를 시작으로, 국가의 온 힘을 기울여 폭정, 거짓, 기만, 살인과 세뇌, 민족문화 파괴 등 중국 민족의 전도와 미래를 훼멸시키는 사악함에 주력하여, 소위 ‘매체’라는 선전 도구의 형식과 국가 폭력 기관 등을 통해 조직적이고, 계획적이며 체계적으로 56년 동안 선량한 중국 인민들의 심령에 해독을 끼쳤다.


‘인민일보’는 중공이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중화 민족 5000년의 역사 가운데 신(神)이 전한 문화를 나쁜 것으로 바꾸어 넣고, 선조들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우주관,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善惡有報)’는 보편적 상식 및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는 도덕기초를 압살한 우두머리이다.


역사의 오늘날, 양심을 회복한 중국 민족의 자손들이 중공 폭정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우리들은 필연적으로 ‘인민일보’가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침투시키고, 나아가 민족의 몸에 달라 붙은 독소를 깨끗이 제거하고 근본부터 개혁해야 한다. 이것은 반드시 장차 공산 사당(邪黨)의 해체와 멸망을 촉진시킬 것이다.


‘인민일보’는 중공의 ‘살인과 세뇌’의 여론 도구로, 지난 56년 동안 중공의 생존과 기만의 운영 기제를 유지하는 과정 속에서, 매체 형식으로 출현한 중공 선전 체계에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에서 모든 신문의 총 발행인은 단 한 명뿐으로 바로 ‘공산당’이다. ‘인민일보’가 운영된 첫날부터, 중공의 의지를 전파하고 관철시키는 최대의 사악한 도구가 됐다.


1. ‘인민일보’는 중국공산당 이데올로기를 구현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에, ‘인민일보’의 중요 사설은 대개 마오쩌둥에 의해 집필되거나 그에 의해 수정됐다. 예를 들면, 1958년 3월, 마오쩌둥이 ‘대약진운동’을 개시한 청두(成都) 회의에서 “조직이 업무를 지도할 때, 주로 신문에 의존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전체 ‘대약진’ 과정 에서, 마오 역시 ‘인민일보’를 통해 대약진의 새로운 형세를 조성했다.


당시 산시성(山西省) 훙자오(洪趙)현은 중앙에 “밀과 조를 접붙이면 1묘당 단위 생산량이 8만 9천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다시 밀을 개량하여 많은 이삭을 맺게 한다면, 생산량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질 것입니다”라고 보고했다. 중공은 이 보고서에 대해 터무니없다고 비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크게 칭찬하여 전국에 하달하였고, 동시에 ‘보고서 원문을 신문에 발표할 수 있다’고 지시했다. (주 3: <농업 집단화 중요 문건 집성 农业集体化重要文件汇编> (하) 제 오십에서 오십 사항, <만년의 마오쩌둥> 제 165페이지에서 인용.)


중공 정권이 수립된 후 여러 차례 운동 중의 사설은, 매번 7.1 창당, 8.1 인민군 창건, 10.1 국경절, 원단 사설 등 매번 대부분이 중공 고위층 인사의 발언과 정신 등을 정리하여 이뤄진 것이다. 예를 들면, 1989년의 ‘4.26’ 사설은 4월 25일 덩사오핑의 당시 학생 운동에 대한 ‘규정’ 발언 이후, ‘인민일보’ 부(副)편집장 판룽캉(范榮康)이 쓴 것이다.


2001년 중공 사당(邪黨) 창립 80년 주년 당시, 인민일보는 장쩌민이 발표한 ‘7.1’ 담화에 근거하여 일련의 중점문장을 구성해 발표했다. 예를 들면 ‘당의 승리와 전진을 이끄는 사상 법보(法寶)’ (인민일보 2001년 6월 7일), ‘삼개대표: 입당 치국의 위대한 강령’ (인민일보 2001년 6월 30일), ‘장(江)XX가 논하는 당의 사상노선’ 등이다. ‘인민일보’ 등 중앙지가 발표한 ‘광둥성 덩샤오핑 이론 연구 센터’의 이름으로 서명한 8편의 저술은, 중공 중앙선전부(中宣部)의 표창을 받았다.


1999년 10월 25일, 장쩌민은 프랑스 ‘르 피가로’지 논설위원장 알랭 빼이르피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파룬궁은 X교다’라고 언급했다. 이틀 후인 10월 27일, ‘인민일보’는 특별 평론위원의 글을 발표하여, 7월 22일 발표된 ‘인민일보’비판 문장 가운데 파룬궁 관련 유언비어를 인용하여 장쩌민의 담화를 논증하는 ‘근거’로 삼았다.


2. 인민일보 : 중공 세뇌와 살인의 도구


중공 폭정 56년 동안, 가장 먼저 발행됐고 영향력이 가장 크며, 기만으로 인민에 가장 큰 해를 끼친 것이 중공의 신문이다. 최근 몇 년간 TV가 널리 보급되긴 했지만, 신문의 특수한 위치를 대신하는 데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인민일보’는 1948년 6월 15일 허베이성(河北省) 핑산(平山)현에서 창간되었고 중공은 체계적으로 ‘인민일보’를 이용하여 중국 인민에 대한 세뇌를 시작했다. 공산당 통제의 잔혹성은 육체적인 학대뿐만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점차 독립적인 견해가 없는 겁장이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공산당은 영원한 통치 목적을 수호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중국인들을 세뇌시켜, 인민들로 하여금 공산당의 생각대로 생각하고, 공산당의 말대로 말하며, 공산당이 행하는 대로 행하도록 만들었다.


중공은 ‘인민일보’ 사설과 평론문장, 좋은 사람과 좋은 일을 표창하는 ‘통신(通訊)’방식 등등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방법을 바꿔 공산 악당이 필요로 하는 사유 모델, 언어 계통, 언어 문자, 선악 표준을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침투시켰다. 사람들은 ‘인민일보’를 읽으면서, 부지불식간에 당 문화에 의해 전 방위적으로 노출되고 독해 당하는 과정에 빠지게 된다.


1949년 이후, 중공이 폭력으로 살해한 중국인들의 숫자는 뜻밖에도 이전 30년 동안 전쟁 희생자들의 총합보다 훨씬 많다. 공산당의 폭력적인 테러리즘은 국가를 매개체로 하고 있다. 중공의 ‘대변자’로서 ‘인민일보’는 중공의 여러 차례 운동 중에서 대중을 말살하는 음험하고 악랄한 도살용 칼이었다. 중공 폭력 기구들은 ‘인민일보’를 대표로 하는 중공 선전 체계를 뒷받침하고 있다. 수백만 명의 군대, 수만 개의 감옥, 150만 명의 무장 경찰, 100여 만 명의 경찰 등 중공 악당은 이러한 방대한 독재 메커니즘을 통해, 거짓말과 인민에 해를 끼치며 중국 민족에 재앙을 미치고 있다. ‘인민일보’의 거짓말을 믿으면 일시적인 안일을 누릴 수 있지만, 만약 의심한다면 “바닥에 나뒹굴게 되어 다시 1만 걸음을 밟아도” 아마도 다시는 “몸을 일으킬 수 없게 될 것”이다.


3. 인민일보 : ‘당(黨) 문화’를 주입하는 도구


지난 56년 동안, ‘인민일보’는 중국 인민들에게 ‘당과 인민’이 어떠한지에 대해 주입해 왔다. 이것은 일종의 심리적인 암시로, 즉 당은 인민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그럼 인민은 누구인가? 전체 13억 인구이다. 원래 중공 당원은 소수로, 13억 인구 가운데 6천여 만 명의 당원으로 전 인구의 몇 십분 의 일에 불과하다. 중공 악당은 ‘대변자’의 선전 효과를 충분히 이용해서 끊임없이 ‘중공 인민들이 공산당을 선택했다’는 생각을 인민들의 마음속에 집어넣는데 이러한 기만과 거짓은 도처에 존재하며 별의 별 것이 다 있다.


인터넷에서 ‘당과 인민’과 인민일보 몇 글자를 검색하면, 검색 결과는 거의 백만 개의 ‘당과 인민’에 관련된 인민일보 글과 사설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당과 인민의 부탁’, ‘당과 인민의 우수 간부’, ‘당과 인민이 부여한 권리’, ‘당과 인민의 요구’ 등등이다.


“중공의 몇 십 년간의 세뇌와 탄압은 이미 공산당의 사고방식과 선악표준을 중국인 생명 깊숙히 짓눌러 넣어, 중국인들로 하여금 모두 일정 정도 공산당의 억지 주장을 받아들고 인정하게 했으며, 아울러 공산당의 일부분이 되어 중국 공산당이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9평공산당’)


4. 인민일보 : 모함과 날조의 도구


중공의 대변자 ‘인민일보’는 중국 사회의 여론 방향을 꽉 틀어쥐고 있다. 50년대 소위 후펑 집단에 대한 비판, 삼면 홍기(三面紅旗)와 대약진에 대한 열광적인 선전, 펑더화이(彭德懷) 우경화 반당 그룹에 대한 숙청과 60년대 계급투쟁을 강령으로 고취하여, ‘삼자일포(三自一包)’와 ‘사대자유(四大自由)’, ‘사청(四清)’ 등 정당 내 주자파(走資派)를 비판하고, ‘문화혁명’에 이르러 ‘사인방’에 의해 ‘장악’되었다. 70년대에는 우경 복권 풍조에 반격을 가했다. 80년대 자산계급 자유화를 반대하고 정신 오염을 제거할 것을 주장했으며 ‘6.4’ 사설을 발표하여 애국 학생들을 반혁명 폭동으로 비방하여 천안문 학생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할 구실을 만들었다. 90년대 들어 인민일보는 중공의 파룬궁 탄압을 위한 대대적인 날조와 비방의 수완을 부렸다.


‘인민일보’는 중공 거짓말과 기만의 직접적인 제조자이자 전파자로서, 살아있는 생명이며 중공의 대변자이며 중공 사령(邪靈)의 생명 가운데 일부분이다. 중공의 선조라 할 수 있는 마르크스는 ‘신래인보(新萊茵報)’재판 사건 중에서 “신문의 사명은, 사회의 수호자이고 도처에 존재하는 이목(耳目)이며 열정적으로 자신의 자유를 수호하는 인민 정신의 대변자”라고 했다. 레닌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현황을 논한다’는 글에서 “합법적으로 존재하고,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지침으로 하는 러시아 신문은 이미 러시아 사회민주당과 노동자 대중들에게 당의 선전선동 사업을 진행하는 가장 중요한 공개적 대변자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마오쩌둥은 일상적으로 ‘대변자’라는 말을 사용하여 중공 당보(黨報)와 당 창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옌안(延安)시기의 중공 기관지 ‘해방일보’는 1942년 4월 1일 ‘독자에게 고함’이라는 사설에서 “해방일보는 진정한 전투적 당의 기관지가 되었다...모든 민족의 적들을 소멸하길 원하고 민족 국가를 설립하길 원하는 사람들의 공동의 대변자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장쩌민은 1996년 9월 인민일보사에서 “몇 십 년 동안 인민일보는 당과 인민의 대변자로써 당의 영도 하에 정확한 신문 발행 사상과 신문 발행 방침을 견지하고, 혁명과 건설, 개혁 가운데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라고 말한 것들은 모두 일맥상통하게 공산 사당의 ‘대변자’가 매체에서 중공 통치 권력의 이미지를 대표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인민일보’의 언론은 직접적으로 공산 악당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중공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바로 거짓과 기만이다. 중공 ‘당국(黨國)’의 거짓말은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도처에 널려 있다. 악당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다.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거짓말과 ‘위대하고 영광스러우며 정확한’이란 거짓말, ‘인민이 주인이다’라는 거짓말과, ‘전민(全民) 소유’라는 거짓말, ‘우리의 친구는 천하에 널려 있다’는 거짓말과 ‘공산주의의 아름다운 이상은 분명 실현될 수 있다’는 거짓말,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일곱 글자 역시 거짓말이다. 중공은 ‘중화민족’의 대표가 아닐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는 ‘공화(共和)’가 실현된 적이 없으며 더욱이 인민에게 속하지도 않는다.


1957년 ‘반 우파’ 운동 가운데 인민일보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이러한 표제였다. ‘노동자 계급은 말했다.’, ‘우파는 반란을 일으키려 하나 우리의 빈농과 하층, 중농들은 호응하지 않는다.’ ‘전국 각 민주당파는 공산당과 한 편에 서서 우파를 함께 토벌하고 있다.’ ‘전체 군 전투 지휘 요원은 분노하여 규탄한다.’ ‘소수 우파는 인민 대중에 의해 겹겹이 포위되었다.’ ‘우파는 소수의 변절자이다. 절대 다수의 지식인들과 당은 한 마음이다.’...


이러한 인민일보의 언어는 일종의 분위기와 심리적 효과를 형성했다. “노동자, 농민, 군인, 지식인, 광대한 인민 대중과 당은 한편에 서서 ‘우파’의 관점에 반대하고 신문은 대다수의 의견을 반영하며 우파는 단지 극소수일뿐”이라는 것이다.


인민일보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거짓말을 날조하는 전형적인 사례는 1958년 8월 ‘인간은 얼마나 용감하고 땅은 얼마나 많이 생산하는가’라는 신문 보도 가운데, 인민일보는 이른바 대약진, 총노선, 인민 공사(人民公社)의 우월성과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후베이(湖北) 마청(麻城)현의 묘당 벼 생산량 3만 6천9백5십근’이라는 소식과 또한 특별히 신문 사진을 발표하여 4명의 어린이가 경작지의 벼 이삭에 위에 서 있는 사진을 실었다. 사진 하단에는 아이들이 서 있는 것이 마치 소파 위에 서 있는 것 같다고 설명을 달고 있다. 그러나, 이 기적은 곧 사라졌다. 1개월 후, 또 다른 한 장의 사진이 등장했는데, 3명의 성인이 위에 서 있어도 쓰러지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사건은 이후 폭로된 진상에서 이 모든 것이 당시 정치적 요구에 의한 허구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화혁명’ 시대에, 거짓말은 더욱더 거리낄 것이 없었다. 분명히 ‘큰 재난’이었지만 ‘인민일보’ 및 기타 각 신문사에서는 오히려 도처에서 ‘사회주의는 영원히 변색하지 않는 백년 대계와 천년 대계를 보증한다’라고 칭송했다. 중국 경제는 붕괴의 위기에 직면하여, 백성들은 안심하고 생활할 수 없었고 원성이 도처에서 자자했다. 그럼에도 ‘인민일보’는 오히려 ‘정치 안정, 시장 번영, 인민 생활수준은 끊임없이 제고’, ‘사회주의의 비할 데 없는 우월성 드러나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바로 ‘당이 얼마나 대담하고 신문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은 하는지’에 대한 진실한 모습이다.


중공의 파룬궁 탄압 가운데,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단지 반년 동안 인민일보를 포함한 중공 선전 도구들이 국내외에서 파룬궁에 대해 모함하고 비판한 글은 30여만 편에 달한다고 한다.


1999년 7월 23일, 중공의 파룬궁 탄압 3일째, 중공 중앙선전부 책임자는 인민일보에 담화를 발표하여, “ ‘파룬궁’ 조직과의 투쟁은 엄숙한 사상정치투쟁으로, 확실히 정확한 여론 방향 등을 장악해야 한다”라고 제기했다. 인민일보 계통의 ‘신문전선’ 잡지에는 특별 평론을 발표하여 어떻게 ‘파룬궁’과의 투쟁을 신문 선전 사업의 중요 정치 임무로 삼을 것인지 전문적으로 논술하고 있다. 이 글은 심지어 구체적인 보도방법까지도 언급했다. “대중들 신변의 일을 많이 채택하고 많은 파룬궁 수련자들을 사상 개조하는 방법, 많은 파룬궁 피해자 및 그 가족들의 비판, ‘파룬궁’ 범죄 행위를 고소한다. 개념적인 선전을 극복하려면, 깊이 있게 노력을 기울여 선전의 실제적인 효과에 주력해야 한다” 등이다.


중국인의 천성은 선량하다. 그러나 사람들의 선한 도덕의 근간은 오히려 중공에 의해 ‘인민일보’를 포함한 선전 체계의 기만과 거짓말에 짓밟혔고, 중공 폭력 기관에 의해 매번 파괴되고 압살됐다.


5. ‘인민일보’의 신문성은 ‘당성(黨性)’의 충분한 체현


‘인민일보’의 영향은 거대하다. 그것은 오늘날 중공 악당이 통제하는 수천 개의 신문, 잡지, 텔레비전 방송국과 라디오 방송국 등 ‘매체’ 가운데 중국 인민에 해를 끼친 시간이 가장 길고, 인민에 침투하여 가장 심각한 해를 끼쳤으며, 중국에 가장 큰 파급력을 미치는 중공 ‘매체’이다. 인민일보는 인민의 정신과 사상에 침투하여, 몇 세대의 가치관, 인생관, 선악관, 도덕관에 영향을 미치며 58년에 이르고 있다.


‘인민일보’는 중공의 ‘대변자’로서 그것이 수호하는 당성은 바로 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에서 변화된 것이다. ‘인민일보’의 중요 사설은 다른 당보에서 반드시 싣는 것이 이미 필수적이 되었고, 지방의 각 성, 시 당보는 감히 함부로 보도하고 평론할 수 없으며 인민일보를 보도 표준으로 하고, 아울러 제1면 중요 위치에 놓아야 한다. 이것은 결코 성문(成文)으로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각급 당보의 편집인들은 그것을 기본적인 당성 원칙으로 삼고 있다.


중공 두목이 부하들에게 요구하는 당성은 노예근성으로 절대적인 복종이다. 13억 중국인들 가운데 중공 당원은 소수이지만 중공의 대변자 ‘인민일보’의 전 방위적 노출 가운데, 모든 사람들은 중공의 당성에 의해 제약받는다. 진반(鎭反), 삼반오반(三反五反), 토지개혁(土改), 반우파(反右), 네가지 청산(四清), 문화혁명, 6.4, 파룬궁 탄압 등 피비린내 나는 수많은 공포스런 대 사건을 겪은 중국 인민들은 천지를 뒤덮고 영원히 그치지 않는 공포 가운데 감히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사실, 설사 백성들이 이미 ‘인민일보’의 공허함과 구호식의 장편 대 논쟁에 싫증이 났다 해도 여러 차례 운동으로 조성된 조건은 많은 사람들이 ‘인민일보’의 보도를 보게 하여 자신을 보호하게 했으며 역대 운동 가운데 관점의 취사, 수렴이 되었으며 행위 표준과 생존의 필요가 되었다. 공산당 ‘여론’의 장기적인 암묵적 ‘세뇌’ 가운데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중공의 사유 방식을 운용하여, 생각할 문제를 버리고, 현실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신문의 언어 모델에 따라 자신의 언어 체계를 규범시켰다. 예를 들면, 무엇을 말해야 하며, 무엇을 말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등등이다. 이러한 순환 과정은 당 문화 가운데 ‘일언당 문화(一言堂文化)’를 거짓 문화, 원한 선동 문화, 건성건성 문화 등으로 만들어 전파 노출시켜 결국 ‘인민일보’의 전파 대상은 당 문화의 영혼이 조종하는 신체로 전환된다.


결론


중공이 마음먹은 대로 거짓말과 기만을 조작하는 기구인 ‘인민일보’는 매 분마다 끊임없이 중국 인민들에게 주입하여 모든 사람들을 어쩔 수 없는 수용자와 피해자가 되게 했다. 거짓말의 제도화와 여기에서 파생된 기만, 허위, 공포는 이를 경험한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러한 각도에서 설명하자면, 중공의 중국 민족에 대한 말살은 환경에 대한 오염과 자연 자원의 무분별한 파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빈부 격차, 경제 붕괴, 사회 위기의 잠복과 더욱 치명적인 것은 민족의 도덕 말살로, 중국 5천년 전통 문화의 말살이다. 중공의 제도화된 ‘매체’의 거짓과 기만 선전은 무수한 중국인들의 마음을 짓밟고 있다.


역사의 오늘날, 우리가 ‘인민일보’의 독소를 깨끗이 제거할 때, 즉 공산 사령 생명의 일부분을 제거할 때이며, 우리 모두가 ‘인민일보’의 기만과 거짓을 인식할 수 있을 때, 다시 말해서 ‘인민일보’ 및 중공이 통제한 모든 사악한 ‘매체’들을 끝장낼 때이다.


글/ 중스차이(仲石才)


중문: http://www.dajiyuan.com/gb/6/2/25/n1236766.htm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http://www.soundofhope.or.kr

 


  목록  
글쓰기
번호
제목 이름 날짜
4371 中, 출입국 심사 때 ‘휴대폰·노트북’까지... 외국인도 ....
디지털뉴스팀
26-09-17
4370 홍콩, 톈안먼 추모 단체에 '정권전복 선동' 유죄
디지털뉴스팀
26-09-01
4369 불안한 中 배추... 신선도 위해 ‘발암물질’에 풍덩
디지털뉴스팀
26-08-26
4368 中, AI협력기구 출범... ‘디지털 일대일로’ 구축?
국제부
26-08-19
4367 후난성 공안, 가정교회에 ‘사기 범죄법’ 적용… “삼자교....
디지털뉴스팀
26-08-07
4366 한국 e소설 비판했던 中 작가... 석사학위 논문 표절 들통
사회부
26-07-27
4365 中, 휴머노이드 관리·통제 시스템 구축... 제조에서 폐....
디지털뉴스팀
26-06-17
4364 中 기이한 기상이변... 35도 날씨가 뇌우·모래폭풍으로 ....
디지털뉴스팀
26-06-02
4363 中, AI 전문가 출국 제한 강화... “당국 승인 받아야”
디지털뉴스팀
26-05-30
4362 中 대학가, ‘스마트 안경’으로 부정행위 확산
디지털뉴스팀
26-04-21
글쓰기

특별보도

더보기

핫이슈

더보기

많이 본 기사

더보기

SOH TV

더보기

포토여행

더보기

포토영상

더보기

END CCP

더보기

이슈 TV

더보기

꿀古典

더보기
466,703,848

9평 공산당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