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중국 사회의 도덕성은 현재 위기 그 이상이다. 가짜 분유, 가짜 의약품, 대량 불법 복제품 등 각종 가짜 제품들은 물론 가짜 대학생, 가짜 교수에 각종 가짜 증명서 등 모든 영역에서 가짜는 막을 수 없는 추세로 만연하고 있으며 일반 국민으로부터 국가 매스컴에 이르기까지 각종 거짓이 난무하고 있다.
사실 중국은 몇 천 년 동안 문명적이고 예의도덕을 지키는 선진국이었다. 그러나 최근 짧은 기간에 갑자기 문명이 뒷걸음질 치고 고수해 왔던 도덕을 완전히 버린 채 전 국민이 가짜 만들기에 나섰다.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영문일까? 중국 역사에는 각종 난세가 있었지만 이처럼 가짜가 성행했던 시기는 없었다.
중국 현대 역사를 자세히 보면 중국인들의 도덕성이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비판을 받았던 마오쩌둥 시대로부터 대폭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각종 깡패수단으로 중국 정권을 잡은 마오쩌둥은 건국한지 얼마 안되는 1957년 반우파 투쟁에서 자신이 직접 제기했던 ‘백가쟁명(百家爭鳴)’을 하루 밤 사이에 ‘독초를 뿌리째 뽑아야 한다’는 말로 바꿔버렸다. 이에 중국의 발전을 위해 비판과 조언을 했던 지식인들과 일반 군중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미처 생각할 사이도 없었다. 사실 마오쩌둥의 목적은 국민들 속에서 ‘반당분자’를 유인해 내려는 것이었다. 결과 마오쩌둥은 55만 명 우파들은 유인해 냈으며 우파로 몰린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은 불행한 삶을 시작해야 했다.
반우파 투쟁이후 중국인들은 진실한 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이듬해 진행된 ‘대약진(大躍進)’운동에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 ‘대약진’은 바로 전 중국 국민이 집단적으로 거짓말을 하면서 진행한 운동이었다. 그 때 중국인들은 ‘무(畝)당 만근을 생산하고 강철생산량을 두 배로 증가시키며 10년에 영국을 초월하고 20년에 미국을 따라 잡는다’라는 황당한 계획을 실현하는데 전념했으며 이 운동은 흉년을 맞아 3~5천만 명의 중국인들이 기근으로 죽어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미국에서 돌아온 세계적인 로켓전문가 첸쉐썬(錢學森)마저도 황당한 사회 기풍에 이끌려 말도 안 되는 논문들을 신문에 발표했다. 그는 “땅 한 무(畝)에 비춰지는 태양에너지를 광합성작용의 효율에 따라 계산한다면 확실히 무(畝)당 만근을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첸쉐썬을 질책하지 말자. 당시 마오쩌둥의 살벌한 총칼 밑에서 중국 국민들은 저마다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1959년에 루산(盧山)에서 열린 회의에서 펑더화이(彭德懷) 대장군이 백성들을 위해 마오쩌둥의 황당한 ‘대약진’운동을 비판했다. 그러나 진실한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국내 전쟁과 한국전쟁에서 마오쩌둥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펑더화이는 루산회의 이후 당을 반대한다는 누명을 쓰고 정치인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 후부터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진짜든 가짜든 상관없다, 마오쩌둥이 무엇이라고 하면 무엇인 것이다”라는 이치가 가장 기본적인 생존 상식으로 되었으며 또 일련의 과정을 거쳐 “공산당이 무엇이라고 하면 무엇이다”라는 이치로 확대되었다.
반우파 투쟁 후, 마오쩌둥은 중국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수립해 그가 한 말은 과거 황제보다 더 위력이 있게 되었다. 당시 유일하게 마오쩌둥의 말에 아부하지 않았던 것은 ‘현실’이었다. 마오쩌둥이 발기한 ‘대약진’은 끝내 대기근으로 막을 내려야만 했다. 애석하게도 생명의 대가를 치른 것은 마오쩌둥과 함께 거짓말을 해온 수천 만 중국인들이었다.
‘현실’에게 뺨을 맞고 잠시 혼수상태에 빠졌던 마오쩌둥은 깨어난 후 주변에 있는 류사오치(劉少奇), 저우언라이(周恩來), 덩샤오핑이 생기 넘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를 보기 힘들었던 마오쩌둥은 여전히 인민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광적인 ‘문화대혁명’을 일으키고 아예 ‘반란은 정당하다’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반우파 투쟁을 겪지 못한 그 때의 젊은이들은 57년의 청년들보다 더 열광적으로 중국 문화를 철저하게 파괴한 이 운동에 참여했다.
마오쩌둥이 숨쉴 틈 없이 벌여온 각종 정치운동의 광기 속에서 중국인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 원래 모습을 잃어갔다. 고위층에 있었던 사람들만 보아도, 류사오치는 박해를 받아 이미 세상을 떠났고 똑똑하기로 소문났던 저우언라이도 각종 모순 속에서 부대끼다 사경에서 헤매고 있었으며 바람 따라 방향을 잘 바꾸는 덩샤오핑은 “명예회복이 필요없다”고 말해 마오쩌둥은 중국 정치계에서 일인자의 자리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
한편 마오쩌둥의 매번 정치운동을 잘 따라 주었던 중국 농민들은 ‘태양을 따르는 해바라기’로, 도시의 노동자들은 ‘중국의 힘’으로, 청년들은 ‘아침 8, 9시 태양’으로 미화되었지만 정작 그들이 가장 필요한 음식물과 생필품은 부족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배를 굶으면서도 입으로는 사회주의가 좋다고 외쳐야 했고 도탄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세계 3분의 2의 계급 형제들을 구원해야 한다고 외쳤다.
모든 것이 뒤바뀐 중국에서 사람들은 이미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이미 분별할 수 없게 되었으며 성실함은 아무 가치가 없게 되어 현실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조상들의 가르침은 아쉽지만 철저하게 버려야 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인들은 간만에 찾아온 평화와 발전 속에서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89년,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후계자답게 중국의 발전을 바라는 대학생들과 민중들의 진실한 입을 탱크와 총으로 막아버렸다. 6.4천안문 사건을 통해 중국 사람들은 ‘양심’이라는 두 단어를 철저하게 부정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덩샤오핑의 뒤를 이은 장쩌민은 어떠했는가? 6.4학생운동의 피를 밟고 덩샤오핑으로부터 정권을 이어 받은 장쩌민은 진실, 선량, 인내(眞善忍)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자신의 정권에 위협이 된다는 착각을 하고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으며 매스컴을 동원해 전세계로 그들을 거짓 모함함으로써 전 국민이 진실한 말을 하는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탄압에 참여하게 했다.
현재 제4대 지도자의 자리를 굳히고 있는 후진타오 역시 티베트 학살의 일등공신 출신으로, 종교 인사들을 탄압하고 인터넷을 봉쇄하며 민주인사들을 대거 체포하는 등 앞서 중공 정권을 잡고 있었던 세 사람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때문에 현재 중국에서 만연되고 있는 가짜 만들기와 도덕성을 잃은 모든 현상은 마오쩌둥을 비롯한 중공 지도자들이 대를 이어 중국 국민들의 양심을 철저하게 타격한 결과이며 이런 현상을 근절하려면 중공 일당독재가 종식되지 않는 한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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