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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원자들의 비참한 생활...베이징 ‘상팡춘(上訪村)’의 실태

관리자  |  200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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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쉰=대기원) 둥좡(東莊)이란 곳은 베이징 출신이라고 해도 거의 들은 적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변두리에 있는 곳도 아니고, 제2환(環)과 제3환 사이에 있으며 북쪽은 타오란팅(陶然亭)공원에 인접해 베이징 중심부에 위치한다. 공원의 동쪽문을 나오면 전국 인민대표대회 청원(上訪)접수소와 국무원신방국(민원 접수국)이 있다. 전국 각지에서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온 사람들이 이 일대에 모여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어로는 ‘상팡춘(上訪村)’으로 불린다. 인터넷 작가의 추왕타이(楚望台)가 3일간 이 마을을 방문해 청원자들의 비참한 생활 상황을 현지에서 취재했다. 본 기사는 대기원이 원작에서 발췌했으며 제목을 일부 수정했다.


● 청원의 길은 돌아올 수 없는 길


2월 28일, 우리는 청원자들의 생활 상황을 전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상팡춘’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의 생활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악하고 비참했다.


우리가 문을 가볍게 노크하자 누군가가 문 틈새로 우리를 가만히 관찰하고 있었다. 우리가 문 틈새로 신분증을 건네주자 잠시 후 겨우 문이 열렸다. 5~6평 밖에 안되는 좁은 방에 20명 남짓이 살고 있었다. 방에는 창이 없고 너덜너덜한 판으로 선반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가장 꼭대기는 거의 천정에 닿을 것 같았다. 지붕 기와는 일부분이 무너져 방 한가운데에서 하늘이 보였다.  


우리가 카메라를 꺼내자 갑자기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청원자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자료를 가슴 앞에 내걸었다. 그들은 이러한 포즈를 지금까지 몇번이나 취해 왔던 것이다. 그들은 울면서 호소했지만 지방 사투리가 강해서 좀처럼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의 슬픔과 허무함은 말이 없어도 전해져 왔다. 청원자들은 법률지식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거의 모두 법률 전문가와도 말이 통할 만큼 대부분 ‘헌법’을 암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하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비록 중앙의 청원접수소가 어떤 회답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1장의 ‘통행증’을 발급하면서 청원자의 출신지로 공을 차듯 되돌려주는 것뿐이다. 지방 정부가 집행을 거절하면 그들은 또 어쩔 수 없이 베이징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이 험한 청원의 길을 일년 또 일년, 괴로움을 견디면서 계속 걸어갈 수 밖에 없다.


어느 청원자는 스스로 정리한, 2개 골목에 사는 청원자 리스트를 건네주었다. 450명 중 270명 남짓이 10년 이상씩이나 계속 청원하고 있었다. 우리는 70세가 된 할머니를 만났다. 33세 때부터 청원을 시작해 수용, 송환, 구금, 정신병원 송환을 199회나 반복해 인생의 대부분을 청원으로 보냈다. 그 할머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에게는 아들과 딸이 한 명씩 있지만 연락은 벌써 끊어졌습니다. 이제는 만나고 싶지도 않습니다. 만나면 아이들에게 폐를 끼칠지도 몰라요. 이 37년간에 눈물도 다 말라버렸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언제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청원자들은 수용, 송환이라고 하는 제도 때문에 베이징 큰 길로 나오는 것 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안후이성으로부터 온 천귀주(陳國柱)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객지벌이 농민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송환되어도 그것 뿐입니다. 우리들은 송환되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시골에서 사는 길이 있다면 베이징에 왜 왔겠습니까? 우리들은 여기서 얼어죽든 굶어죽든, 결코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지 않습니다. 만일 송환되면 반드시 죽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들은 언제나 마을에 오는 경찰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찰과 경찰 주민 합동 치안유지대가 한밤중에 문을 찢고 들어와서는 신분증을 조사해 청원자들을 자주 데려 간다. 어디에 데리고 가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도망쳐 다시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취재하러 간 전날 밤에도 ‘산둥성 지난(濟南) 정신병원’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집을 한 채씩 조사한 후, 산둥성에서 온 ‘정신병 환자’를 차에 밀어넣고 어딘가로 사라졌다고 한다.


● 공정함을 요구하지만 음식은 요구하지 않는다


점심식사시 우리는 다른 방으로 들어갔는데, 청원자들이 빙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손에는 모두 컵라면 컵을 들었고 컵안에는 뜨거운 물로 삶은 배춧잎이 들어 있었다. 청원자 서쥐안(徐娟)에 의하면, 방의 집세는 주워 온 폐품을 판 돈으로 지불하기 때문에 근처의 폐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먼 곳까지 나가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패트병을 주워 와 돈으로 바꾼다고 한다. 대체로 하루에 4, 5위안을 버는데 그것으로 하루 분의 집세를 낸다. 음식은 가까운 야채 시장에서 버린 야채를 주워 온다. “냄비도 주워 온 것인데 내장용 페인트 용기입니다. 잘 씻으면 조리하는데 사용할 수 있지요.”


이러한 생활은 ‘상팡춘’에서 가장 좋은 편에 속한다. 폐품을 줍는 기력도 없는 사람은 철로 옆 낮은 벽에 나무 토막과 비닐 시트로 만든 오두막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오두막 양쪽이 뚤려 찬바람이 불어도 거기서 추운 겨울을 보내는 것이다. 그들의 오두막을 시(市) 관리소에서 몇번이나 망가뜨렸지만 그때마다 다시 만든다. 근처에 사는 마을사람의 이야기에 의하면, 지난 겨울에 어느 노인이 나무 토막을 주워 철로 반대편으로 달려가다가 넘어져 열차에 양 다리가 끊어졌다고 한다. 그들은 병원에 갈 돈도 없기 때문에 병들면 참을 수 밖에 없고, 운 나쁘면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음식을 구걸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베이징에 공정함을 요구하러 온 것이지 음식을 요구하러 온 것은 아닙니다. 수도에는 외국인도 많기 때문에 우리들은 나라의 이미지를 망칠 수는 없습니다.” 청원자 중의 쩌우라이순(鄒來順)이 엄숙하게 말했다.  


허술한 오두막마저도 지을 수 없는 사람은, 비닐 시트를 몸에 감아 카이양(開陽)다리 밑에 지하 통로에서 잘 수 밖에 없다. 여기를 지나는 사람은 언제나 코를 막고 서둘러 지나간다. 북풍이 지하 통로에 불어 닥치면 얼음창고처럼 추워 진다. 그믐날 밤, 우리가 식탁에 둘러앉아 ‘풍요로움을 향수’하며 불꽃이 마을의 밤하늘을 밝게 비추고 있을 때, 두 개의 생명이 이 통로에서 조용히 사라져 갔다.

 

‘상팡춘’ 바로 옆이 번화가인 카이양(開陽)로이다. 철교 위에서 보면 천국과 지옥이 낮은 담으로 나누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밤, 우리는 ‘상팡춘’에 숙박했다. 마을사람들은 우리를 위해 장소를 마련해 주었다. 우리는 잘 자지 못하고 침대에서 몇번이나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카메라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중이 그들을 주목해도 그들에게는 어떠한 이득도 없으며, 반대로 그때마다 여기에서 내쫓길 뿐이었다. 가까운 교회나 대학에서 생필품을 보내준 적도 있지만, 그 얼마 안 되는 원조조차도 마을에 있는 사복경찰 몰래 조금씩 행해지고 있다. 우리들이 돌아가서 모금활동을 하자고 이야기하자 어떤 청원자는 자신의 청원 자료를 가져와 부디 갖고 가달라고 말했다. 우리는 청원에 의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불과 2%밖에 안되며 복권 당첨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는 것을 듣자 정말 참을 수 없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은 공산당이나 중앙정부에 대해서 경건하다. 그들은 그들의 원통함은 지방관료의 부패 때문에 생겼으며 중앙정부가 그들의 자료를 보면 반드시 그 억울함을 풀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단순한 경건함 때문에 그들은 베이징에 계속 머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후주석은 이 바로 옆에 있다! ”


● 큰 금액을 들여 청원의 길을 차단


‘상팡춘’부터 국가신방국(청원 접수국)까지 2킬로미터 밖에 안되지만 가는 도중에는 위험이 잠복해 있다.


타오란(陶然)다리까지 걸었더니 사이렌을 울리면서 지나가는 경찰차를 몇대나 보았다. 게다가 수십 미터를 더 가면 파랑과 흰색 선이 들어간 공검법(공안, 검찰원, 재판소) 차량이 100대 이상 국가신방국의 앞까지 줄지어 있다. 신방국은 막다른 골목안에 있으며 전국 각지에서 온 청원자들을 연행하려는 사람들이 골목 입구를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다.


지방 정부의 안정도는 청원자의 수에 의해 판단되어 지방관료의 성적도 현지 청원자 수와 관련이 있다. 각 지방정부는 그곳에서 경찰을 동원해 청원자들을 연행하고 있으며 그것은 지금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게다가 연행하는 경우 비용은 무시된다. 그들은 보통, 제2환과 제3환가(街) 호텔이나 접대소에 살고 있다. 1회의 연행 비용과 연행원에 대한 상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비행기로 데리고 온 사람도 있어요”라고, 집주인 리(李)씨가 가르쳐 주었다.

 

연행원들은 모두 경찰 제복을 입고 골목 입구와 신방국 입구, 그리고 신방국 내에 각각 검문소를 마련한다. 수백명의 경관이 이 좁은 골목에 서로 북적거리며 골목 양쪽에 줄을 선다. 신방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청원자는 어쨌든 열과 열의 사이에 마련된 좁은 통로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연행원들은 그곳을 지나는 청원자를 잡아 사투리를 듣고 신분증을 조사한다. 그 청원자가 자신의 지역에서 온 사람이 아니면 통과시켜주지만, 만약 자신의 지역에서 온 청원자를 찾아내면 즉각 데리고 간다. 반항하면 5, 6명이 일제히 구타해서 억지로 경찰차에 밀어넣는다.


우리의 경우는 베이징의 신분증을 제출해 이 관문을 빠져 나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100미터도 안 되는 이 짧은 골목을 통과하는 도중에 몇번이나 붙잡혔는지 1시간 가깝게 걸렸다. 다행히 신체검사는 없었지만, 만약 그런 일이 있으면 결과는 상상할 수 조차 없을 것이다. 우리조차 이렇게 심한 곤란을 당했는데 청원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어떤 곤란을 당했는가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청원자들은 우리보다 훨씬 비참하다. 원래 가까이서 연행 장면을 찍고 싶었는데 연행원의 수가 청원자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니 단념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을로 돌아와 택시를 타고 차내에서 골목 입구를 촬영한 것만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내가 3일동안 직접 보거나 들은 것이다. 나는 자신의 인격을 걸고 이 기록이 모두 진실하다는 것을 맹세한다. 칸트는 ‘지식인은 사회의 양심이다’라고 말했다. 만약 내가 지식인이며, 내게 아직 양심이 있다면 이 말로부터 내가 느끼는 것은 영광이 아니라 깊은 치욕이다. 나는 유일한 바람은 향후 새로운 청원자 중에 나의 어머니가 포함되지 않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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