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100년 전 신해혁명 당시 중국에 주재했던 외신기자들은 중국의 격변을 어떻게 보고 느꼈을까요? 독일 도이체벨레 방송은 100년 동안 잠자고 있던 옛 자료를 근거로 다른 시각에서 역사를 되짚었습니다.
독일의 쾰른 자이퉁(Kölnische Zeitung)은 당시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으로 최초로 신해혁명을 보도했습니다. 1911년 11월 1일 중국 주재 기자가 쓴 '중국의 무창기의(武昌起義)’라는 제하의 기사는,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중국 민중들의 시위가 강대한 힘으로 통합되지 않으면 청나라 정부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러한 강대한 힘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일어났고 그 거대한 힘은 중국 민중의 지지를 얻고 있어 전국적인 봉기가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꿰뚫어 보았습니다.
신문은 또 이 거대한 힘에 대해, ‘사람들은 이들을 혁명당이라고 통틀어 말하고 있지만 통합된 단체는 아니고 많은 지하 혁명조직들이 함께 힘을 모으고 있다. 이들 혁명당 당원들은 임시 조직체계를 갖추었다고 볼 수 있고, 군사력을 장악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평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발행된 노이에 프라이에 프레세(Neue Freie Presse)는 1911년 10월 18일 외교관으로 중국에 장기간 거주했던 한 중국통의 기고문을 실었습니다. 그는 ‘쑨원(孫文)이 이끄는 중국혁명’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봉기를 일으킨 사람들이 조직적이지는 않으며, 기세가 등등하고 웅대한 계획을 외치고 있지만 그것은 중국인의 특징으로 혁명 지도자들도 혁명은 단계적으로 진척시켜 최종 목표인 공화국 성립을 이뤄내야 한다고 하고 있어 아직은 성숙한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혁명의 기세가 중국 언론들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게 중국 전역으로 번져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진 쓰촨 지방에서도 수 차례 탄압에도 봉기가 그치지 않고 있으며, 광둥까지 번져나갔다고 전하면서 분석이 정확하다면 혁명의 위력을 작게 볼 수 없다고 전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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