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산시(陝西)성 선무(神木)현에서 발견된 4000여년 전 도시, 스마오(石峁) 유적은 돌계단 성지로 ‘2012년 세계 10대 중요 고고학적 발견’으로 선정될 만큼 중국 내외의 관심을 모았다.
선무현 문화체육국 직원은 "황제(黄帝) 부족이 이곳에서 생활했을 가능성이 높다. 스마오 유적의 발굴 의의는 진시황의 병마용 발굴 의의를 뛰어넘었으며, 마야 문명 및 이집트 피라미드에 필적할 만하다"고 소개했다.
1929년 한 독일학자가 당시 베이핑(北平)에서 산시성 북부지방 농민으로부터 일부 고옥(古玉)을 수매했다. 이 독일학자는 이 고옥들이 매우 독특하며 연대 또한 아주 오래되었음을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산시성 북부 스마오는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이후 수십 년간 약 4,000여점의 스마오 유적의 고옥이 중국 밖에서 떠돌고 있으며, 여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고옥은 발굴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돌계단으로 쌓은 벽에서 분산된 돌덩이에서 발견됐으며, 대량의 고옥이 돌무지 중에 흩어져 있었다. 가장 가능성 있는 추측은 이런 고옥들이 본래 벽 사이에 끼워져 왕성(王城, 왕의 도시)의 존귀한 지위를 표시하려 했다는 것이다.
스마오 성지는 황제의 도시로 내성, 외성 3개가 기본으로 갖춰져 있으며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석조도시 유적이다. 내성의 면적은 210여만 평방미터, 외성의 면적은 190여만 평방미터이다. 성벽은 스마오 성터의 기본이며 비교적 폐쇄된 독립공간을 형성한다.
유적의 일반 벽면에서 백색의 진흙층을 볼 수 있다. 이 백색의 진흙층은 석회로 이것은 4000여년 전에 이미 건축에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스마오 유적의 발굴은 중국문명사를 대폭 앞당겼으며 마면(馬面), 각루(角樓) 등은 성 방위시설의 역사를 2000년 앞당겼다. 이전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위진(魏晋)시기였다. 이 발견으로 중국 벽화의 기원을 수백년 앞당겼으며, 중국 문명 기원 연구에 새로운 연구모델을 제공했다.
스마오 고성은 룽산(龍山)시대 정착된 농업문화를 토대로 치자(齊家)문화의 청동 유목문화성분을 흡수해 동서남북 문화를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다. 룽산시대 말기의 유럽과 아시아 초원사회는 이미 소, 양, 말의 사육, 밀 재배, 청동기 제작 등 매우 많은 중요한 기술을 장악했으며, 특히 우랄산맥 동쪽의 신타스타(Sintashta) 문화는 바퀴가 있는 마차를 발명했다. 지금까지의 발견으로 본다면, 이곳은 유럽 아시아 초원에서 중국 황하 유역 문화 전파의 중간 고리였다.
스마오 유적은 이런 관건적 문화의 전파시기뿐만 아니라 지리적 위치로 볼 때, 중국 북방 농목교착지대의 중심위치에 있고, 북으로는 유럽아시아 초원지대에 가까우며, 남으로는 중국 고대문명 중심과 멀지 않다. 이런 의의를 놓고 말할 때, 스마오는 룽산시대 중국과 서방문화 교류 연구를 위한 모델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소, 양, 말, 밀과 석조 등은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공통적 문화요소로, 이것 때문에 스마오 고성은 세계 고고학 연구의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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