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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가지 꺾기 왜 이별을 뜻하게 되었을까요?

편집부  |  201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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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부드럽고 우아한 버드나무의 자태는 옛날부터 문인들이 즐겨 쓰는 소재였습니다. 당나라 시인 하지장(賀知章)은 `버드나무를 노래하다'라는 영류(詠柳)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습니다.

 

`碧玉妝成一樹高 , 萬條垂下綠絲條

不知細葉誰裁出, 二月春風似剪刀'

 

`푸른  옥으로 치장한 높다란 나무 가지

초록실 늘어뜨렸네, 자그마한 잎새들 그 누가 말랐을까 2월 봄바람이 가위질 한 것 같구나.'

이제 막 잎이 돋기 시작하는 부드러운 버드나무가지를 초록실에 비유한 것이 운치 있습니다. 또한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은 노로정(勞勞亭)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天下傷心處    (천하상심처)       천하에 마음을 상하는 곳은

勞勞送客亭    (노로송객정)       안타까운 심정으로 객을 보내는 정자로다.
春風知別苦    (춘풍지별고)       봄바람도 이별의 괴로움을 알아
不遺柳條靑    (불유유조청)       버들가지를 푸르게 하지 못하네. 

 

여기서 버들가지는 이별의 정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꺾인 버들가지는 왜 이별을 뜻하게 되었을까요?

 

고대 중국의 수도였던 장안의 동쪽을 흐르는 패수(霸水) 위에는 패교라는 다리가 있고 이 다리 양쪽으로는 버드나무가 고즈넉하니 늘어서 있었습니다. 한나라 때 장안에 사는 사람들은 손님을 전송할 때면 이곳에서 버들가지를 꺾어주며 이별의 정을 아쉬워했습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버드나무 류(柳)와 머물 류(留)은 발음이 비슷하여 만류할 수는 없지만 붙잡고 싶은 석별(惜別)의 마음을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줌으로써 나타내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풍습은 한나라 때 시작하여 당나라 때 성행하였으며 이별의 관습으로 굳어졌습니다. 절류와 비슷한 표현으로 패릉절류 (霸陵折柳)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백은  한시형식 중의 하나인 악부에서 해마다 푸른버들, 패릉의 슬픈 이별 (年年柳色,霸陵傷別)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절류(折柳)는 고대 악곡 절양류(折楊柳)의 약칭이기도 합니다.

 

그리운 정서가 다분해 곡조가 처량하고 사람을 멀리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담긴 이 노래는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한나라 때 장건(張騫)이 서역에서 돌아올 때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백(李白)의 시 ‘봄밤 낙양에서 피리소리를 들으며(春夜洛城聞笛)'에도 절양류를 읊은 대목이 나옵니다.

 

이 밤 노래 속에 절양류 소리 들리니             此夜曲中聞折柳

누군들 고향 그리는 마음 생기지 않으랴        何人不起故園情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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