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은 겨울철에 주로 따뜻한 동남아에서 지냈는데 올 겨울은 집 구석에서 지내게 되었다.
햇빛도 안 들어 오고 창문도 없는 2평 정도의 반 지하 방구석으로 온 지도 벌써 1달이 지났다.
창문이 없고 사방이 막혀서인지 밖에 해가 떳는지 졌는지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고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방 바닥에는 지난 3월달과 같이 1인용 전기장판을 깔고 아래는 회색 내복과 위에는 집구석에 여분으로 남은
여자용 분홍색 내복과 팔 없는 파카를 입고 머리에는 털모자를 쓰고 뜨거운 물을 넣은 고무 물주머니를
수건으로 둘러 껴안고 15~20도 정도인 방안에서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이 겨울에 껴안을거라곤 뜨거운 물을 넣은 고무 물주머니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한 없이 서글퍼진다.
1년중 가장 추운 요즘 서울역이나 영등포역등지에서 잠을 해결하는 노숙자들은
추위를 견딜려고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넣고 신문지로 싸서 껴안고 잔다고 한다.
고무 물주머니를 껴안고 자는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나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넣어 껴안고
밤을 지새는 노숙자나 사는 방식이나 모습이 너무나 비스무리해서 뜨거운 동지애를 느낀다.
이런 엄동설한에 길거리에서 주무시는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의 동지들이 서울에만 1200여명 된다고 한다.
따뜻한 쉼터에도 술등 여러가지 이유로 견디지 못하고 독립해서 나와 길거리에서 하늘을 이불 삼아
주무시는 분들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다.
구질구질한 조선족들도 쪽방이나 고시원들을 차고 들어가는데
대한민국 국민이 여름도 아닌 추운 겨울에 노숙이 말이 되는가.....
100년도 못 살고 가는 세상인데 왜 이리들 서럽게 사는가.....
독립은 구속 안 받고 잘 살려고 하는건데 기껏 독립해서
구질구질한 조선족보다 못한 노숙을 한다는게 참으로 안타깝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왜 한국인의 장점을 못 살리는가.
머리는 무슨 데코레이숀으로 달고 다니는가.....
동남아인들이 비자등으로 한국에 오기 어려워도 한국인들은 개나 소나 동남아나 중국은 쉽게 갈 수 있다.
가장 서럽고 밑바닥인 1200여명 독립을 선언한 노숙자에게 제일 만만하게 비집고 가서
장기 순회공연 하기 좋은 곳이 동남아의 구질구질한 캄보디아다.
물론 태국의 지방도 가능하겠지만 온 세계에서도 많이 오고 한국인들이 많이 가기 때문에
화려한 태국보다는 구질구질한 캄보디아가 구질구질한 노숙자들에게 겨울 한철을 나기에는 와따다.
이 엄동설한에 쪽방이나 싼 고시원에 생활을 해도 방값만 한달에 20만원에 식비등 해서 40만원은 들것이다.
비록 비행기값이 들지만 따뜻한 캄보디아 지방으로 가면 한달 100불이면 떡을 칠 수가 있다.
한국에서 쪽방이나 고시원 생활 3달 정도 비용으로 선선한 10월부터 3월까지 6개월을
따뜻한 캄보디아에서 죽 때릴 수 있다.
지난 번 프놈펜에서 3시간 정도 가서 강이 흐르는 아담한 도시에 하루 2불을 주고 공연을 한 적이 있다.
방값만 한달이면 60불인데 할인해 줘도 50불은 방값으로 나갈거 같아서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 보자는
생각으로 숙소앞에서 오토바이 운전하는 젊은이가 한달에 방값 10불을 주고 지낸다고 해 가 본적이 있다.
10개정도 방이 있는 곳으로 블럭으로 칸막이를 하고 세면 바닥을 한 완전 서민들이 사는 곳이었다.
이곳 서민들 수입을 물어보니 대부분 한 달 20불 정도라고 한다.
이런 곳에서 1달 100불을 사용하면 구질구질한 방에 소고기, 아사히 캔맥주, 냄비로 떡을 칠 수가 있다.
아무리 서민들이 사는 이런 구질구질한 월세 10불짜리 방도
한국에서 추운 겨울에 역전에서 노숙하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은가.
1달 방값으로 10불 나가고 20불이면 휠씬 괜찮은 방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먹는건 아침에 근처 시장 입구에 가면 밥에다 숯불에 구운 소고기를 얻은 곽밥을 3개에 1불이면 살 수 있다.
이렇게 매끼를 소고기 반찬으로 먹는다고 해도 기본 한달 식비는 30불이면 된다.
한국에서 등산갈 때 사용하는 접으면 손바닥만한 휴대용 가스 버너를 준비해
현지에서 다시 가스를 채워 파는 부탄가스를 사서 직접 해먹으면 1달 20불이면 떡을 친다.
방값과 식비해서 50불 정도 든다고 하고 남는 돈이 50불 정도 될것이다.
한국에서 완전 자주 독립을 선언한 노숙자들은 대부분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역시 술을 찾으러 다닐 것이다.
캄보디아는 일본 아사히 캔 맥주를 싼 값에 살 수 있어 24개 박스채로 사도 10불이면 산다.
노숙자로서 한국에서 마시기 힘든 아사히 캔맥주를 매일 2캔을 마셔도 20불 정도면 된다.
그래도 남는 돈은 필리핀 여자가 사람들 모아 놓고 미국말를 가르치는데 1시간에 500리알 (100원 정도) 면
여러이 배울 수 있다. (당시 환율이 1불 = 4000 리알 = 1000원)
이 곳은 이상하게 미국말 배우는 것보다 한국어 배우는게 더 비싸기 때문에 노숙자에서 과감하게
한국어 선생님으로 변신이 가능해서 생활비를 벌거나 봉사를 할 수가 있다.
조금 남은 돈은 주변에 널린게 냄비들로 한국에선 비싸서 근접하기 어려운 냄비들도 이곳에선 부담이 없는 곳이다.
캄보디아가 전에 캄보지아로 불렸듯이 전국 방방곡곡에 봉지가 흔한 곳이다.
반반한 아가씨를 골라 호텔에서 1시간 맛사지가 4불 정도이고 한국에서 프라스틱 페트병만 안아 보았던
노숙자들도 페트병이 아닌 진짜를 안아 보는 것도 한국의 자장면 한 그릇 값이면 떡을 치는 곳이다.
여름철 노숙이면 몰라도 영하 10도 떨어지는 요즘 노숙은 사람을 골병들게하고 서럽게 만든다.
일을 할 수 있는 노숙자들은 겨울이 닥치기 전에 농촌등으로 가 2달 정도 노동해 1000여불 정도 마련해
겨울철 6개월을 따뜻한 캄보디아에서 노숙자에서 한국어 선생님으로 화려하게 변신해 술과 고기와 냄비로
우아하게 지내기를 간곡히 바란다.
겨울을 화려하게 지내고 따뜻한 봄날에 비행기를 타고 입국할 때 쓰는 입국신고서에 직업란이 있다.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는 이런 생소한 네모칸에서 항상 망설이다가 주로 빈 네모칸으로 나두는데
정 써야 할 경우에는 순회공연도 예술이라 정직하게 “아티스트” 라고 쓴다.
캄보디아에서 화려하게 사교육 선생님으로 변신한 노숙자들은 직업란에 무직이니 노숙자라고 쓰지 말고
선생님이나 교직으로 쓰든가 영어로 쓸 경우에는 “랑구지 티처” 라고 정직하게 쓰면 된다.
겨울을 화려하고 따뜻하게 외국에서 보내고 번쩍이는 인천공항 입국장을 빠져 나온 한국어과 선생님들은
날씨도 따뜻해졌으니 각자 제 위치인 서울역, 영등포역, 용산역, 시청역등지로 가서 하던 일을 계속하다가
농촌등지에서 한 두어달 노동해서 선선해지는 10월달에 쥐도 새도 모르게 한국어과 제자들이 기둘리는
동남아 캄보디아로 헌 국민학교 교과서 몇 권과 고추장, 된장, 다시다를 준비하고 손에는 타이무지나 뉴스위쿠지를 들고 6개월 겨우살이 장기 순회공연을 떠나면 된다.
그럼 역전에서 노숙을 하는 노숙자 바로 전단계 즉 준노숙자인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의
지난 15개월 동안 동남아 이야기인 求道的 순회공연을 마치며…시리즈 진도 나간다.
난민촌을 같이 가기로 한 35세 게이랑 약속이 어긋나 혼자 태국 북부를 몇 일간 돌고 다시 국경쪽으로 돌아왔다.
가지고 있는 일본 가이드북의 지도를 보니 난민촌과 머리를 기른 도인들이 산다는 곳이 같은 방향에 있고
근처에 있는 걸 확인하고 혼자 가기로 결정했다.
아침을 일 주일에 2번 서는 숙소 뒤에 시장에서 700원짜리 덮밥으로 간단히 때우고 숙소에 짐을 맞기고
20년 가까이 사용하는 어깨에 매는 작은 배낭에 필림 카메라와 필림 몇 통, 작고 튼튼한 삼각대,
지도가 있는 일본 가이드 북 그리고 바르는 모기약을 준비해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쏭테우가 있는 곳으로 갔다.
난민촌과 도인들이 산다는 곳을 갈려면 일단 숙박시설이 있는 3시간 떨어진 근처 작은 산촌 마을을
가야 하는데 1시간 마다 떠나는 쏭테우를 타고 5시간을 가야만 한다.
1일치 숙박비에 해당하는 120밧 (3600원)을 내고 이스즈 트럭을 개조한 쏭테우에 오르니 옆 자리에
태국 승복을 입은 젊은 스님이 앉아 있었다. 얘기를 해보니 미얀마에서 왔고 난민촌으로 간다고 한다.
9시 정각에 사람을 꽉채운 쏭테우가 떠난지 15분 정도 되자 경찰이 차를 세우고 신분증 검사를 하였다.
30분 간격으로 2차례 더 검문을 더 하고 11시 반경에 점심을 위해 휴계소에 30여분간 정차하였다.
정차하는 중에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젊은 스님과 얘기해보니 미얀마 방글라데스 국경에 있는 라카인주에서
태었났다고 해서 나도 전에 배를 타고 그 곳에 갔다고 하니 무지 반가워 한다.
내 또래의 아는 스님중에 미얀마 바닷가에서 주지로 그도 라카인 출신이라고 얘기하니
양곤에 있을 때 자기 스승이었다고 말하고 이곳에서 편하게 다닐려고 태국 승복을 입고 다닌다고 한다.
다시 쏭테우가 떠나고 3분 정도 지나자 왼쪽으로 거대한 난민촌이 보이기 시작했다.
젊은 스님은 이곳이 난민촌이고 난민촌중에 꽤 큰 규모이고 자기가 있는 곳은 400여채 정도있는
아담한 규모라 한다.
대나무로 기둥을 한 초가집 같은 허름하고 간소한 작은 집들이 빽빽히 산 전체에 있었다.
길게 늘어선 난민촌 중간 정도에서 군용차 옆에 군인들이 차를 세우고 다시 신분증 검사를 했다.
신분증 검사하는 동안 사진 좀 찍을려다 분위기도 그렇고 해서 안 찍고 몇 일후 나올 때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다시 2시간 정도 잘 포장 된 산악 도로를 달려서 산 속에 아담한 도시에 도착을 했다.
이 곳 도착 4키로 전에 사람들이 많이 내렸는데 알고보니 이곳에서 갈아타고 난민촌과 미얀마 국경으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젊은 스님도 일단 내렸다가 내가 종점까지 간다고 하니 자기도 난민촌은 내일 가고
나와 같이 4키로 더 가서 종점에 내렸다.
캔 음료 2개를 사 젊은 스님에게 1개를 주고 얘기하는데 곧 난민촌쪽으로 떠나는 쏭테우가 있어
이곳에서 머물데도 마땅치 않은 스님이 먼저 간다고 하면서 자기가 머무는 난민촌에 4개의 절이 있고
이름과 이메일을 적어 주고 떠났다.
종점 작은 터미널에서 숙소를 찾을려고 강가가 있는 시내로 가서 숙소를 알아보니 100바트(3000원)
짜리는 없고 대부분 200바트 정도 하였다.
1시간 정도 다니다가 리조트라고 씌여 있는 곳에서 서양 여자가 걸어 나오길래 혹시나 하고 안으로 들어가 물어보니 200바트를 불러 밖으로 나오는데 이 곳에서 일하는 젊은이가 불러 얘기 중에 자기가 100바트에 묵게 해줄 수 있다고 해서 다시 가서 100바트에 숙소를 정했다.
큰 침대 3개에 화장실, 테레비, 냉장고등 단체 손님등을 받는 꽤 큰 리조트였는데 비수기였는지
대부분 비어 있어서 싼 100바트에 손님을 받은거 같다.
할인해준 젊은이가 고마워 숙소 건너 상점에서 맥주와 안주를 사와 젊은이와 밤이 늦도록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한 잔 했다.
미얀마 태생으로 이곳에 불법으로 와서 리조트에서 한달 100불 정도 받고 가이드로 장기간 일하고 있었다.
미얀마 파안에서 1달 10불 받고 일하다 이곳에 와서 10배인 100불을 받는다면서 집에는 1달에 70불 정도 보내고
1년에 1번 집에 갔다 온다고 한다.
이 친구로 부터 여러가지 정보와 트레킹 지도를 얻고 다음날 아침 일찍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이곳에서 다시 머리를 기른 도인들이 산다는 마을에 갈려면 일단 3시간 걸리는 종점인 미얀마 국경까지
가야만 한다. 2시간 정도 가니 왼쪽으로 산 아래 평지에 아담한 무수히 많은 초가집같은 난민촌이 보였다.
여기서 미리 내려 구경하고 종점까지 갔다가 잘못하면 숙소도 없는 종점에서 나오는 차를 놓칠 것 같아
이 난민촌은 나오다가 들릴 예정이었다.
이 난민촌에 전에 같이 오기로 한 35세 게이와 이곳에 올 때 쏭테우에서 만난 젊은 스님도 이곳에서 살고
나중에 알아지만 전에 국경 마을에서 저녁때 마다 간 내 또래 미얀마 음식점 주인도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이곳에서 여러명이 내리고 다시 출발하여 아름다운 산촌길을 1시간 더 가서 종점인 국경에 도착했다.
(지난 번에 쓴 글 위에 사진이 국경 모습이다.)
3시간을 달려 와 종점에 내리니 날씨는 덥고 해서 주변 허름한 가게에서 5바트(150원)를 주고 빙수를 사 먹고
주변을 돌아 다니다 점심 때가 되어 시장도 하고 해서 혹시 미얀마쪽에 가면 미얀마 음식을 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국경 오른쪽에 있는 태국 군인들에게 가서 이 국경 안쪽에 잠시 들어 갈 수 있냐고 물으니 바로 국경쪽에만 있어야지 그 이상은 못 들어다고 해서 미얀마 국경 안쪽으로 들어갔다.
(지난 번 쓴 글 중에 아래 사진이 미얀마 국경 들어가 태국쪽을 향해 찍은 사진이다.)
미얀마쪽으로 들어가니 태국쪽과 다르게 모든게 허름하고 소박하게 보였다.
이 국경쪽은 미얀마 정부에서 관리하는게 아니라 미얀마 반군 카렌족이 관리하는 것 같았다.
아주 허름한 몇 개의 구멍가게 상점이 있었고 오른쪽에 찻집을 겸한 음식점이 있어 들어 갔다.
600원 정도 하는 밥과 치킨커리를 먹고 무료로 나오는 차 몇 잔으로 점심을 때웠다.
차를 마시고 있는데 이곳에 들어올 때 허가해준 태국 군인이 식당 앞에 와서 내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이때다 싶어 나가서 태국군인에게 이곳에서 사진 찍어도 되냐니 안된다고 해서
한국에서 왔고 1장만 찍겠다고 겨우 허락을 받고 1장 찍은게 지난 번 쓴 글에 아래 사진이다.
다시 태국쪽으로 나와 머리를 기르고 사는 도인들이 있는 곳을 알아 보니 이곳에서는 물어물어 걸어가든가,
오토바이로 가든가 아니면 혹시 도인 마을에서 나온 경운기를 얻어 타고 가는 3가지 방법이 있었다.
걸어가는 방법은 지리도 잘 알고 산길을 잘 걷는 사람이 걸어도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라 초행길에 어려웠고
오토바이를 대절하던가 아니면 도인마을에서 나온 경운기를 타고 들어 가는 방법이 있었다.
이곳에 와서 빙수를 사 먹은 허름한 가게로 다시 가서 비상식품으로 1봉지에 150원짜리인 콩에다 찹쌀을 묻혀
튀긴걸 여러 봉지를 사고 가게 앞에서 서성거리자 아주머니가 도인마을에서 경운기가 나왔으니 가서
알아보라고 알려 주었다.
이 국경 마을은 숙소도 없고 해서 도인 마을을 갈 수 없으면 나가다가 난민촌만 들렸다가 불법이지만
난민촌 안에 있는 절에서 자던가 아니면 어제 잤던 100바트를 주고 잤던 도시로 다시 나가야만 한다.
성능이 좋아 보이는 구보다 경운기를 타고 나온 2명의 머리를 기르는 사람들에게 구질구질하게 다가갔다.
운전을 하는 1명은 20살 정도이고 다른 1명은 4,50대 정도로 인상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경운기를 타고 머리를 기르는 마을에 가고 싶다고 하니 한 동안 말을 안하고 나를 위 아래로 쳐다 보더니
자기들 볼 일이 있어서인지 이곳 저곳에 가서 기름등 여러가지 물건을 사고 해서 나도 따라 다니며
거드니 거의 1시간 정도 지나서 들어갈 준비가 됐는지 나보고 경운기에 타라고 해서 경운기 짐칸에
나이 많은 이와 같이 불편하게 앉았다.
당연히 경운기가 국경 전에 태국땅인 왼쪽으로 가는 길로 즉 도보나 오토바이가 가는 길로 가는 줄 알았는데
좀 전에 점심을 먹었던 미얀마 국경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미얀마 국경쪽으로 갈 수 없는게 미얀마 비자도 없고 비자가 있다고 해도 이곳은 출입국이 가능한 정식국경이
아니기 때문에 통과 할 수 없고 특히 이 지역은 미얀마 정부에 반대하는 미얀마 반군인 카렌군인들이 관리하는
안전치 못한 지역이다.
미얀마쪽으로 가는건 갈 수 없으니 태국땅으로 가자고 여러번 얘기 했으나 나중에 나올 때 보니
태국땅으로만 가는 국경 전에 왼쪽으로 가는 도보나 오토바이로 가는 길은 길이 좁은 오솔길이고
산을 여러번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는 길로 도보나 아니면 산악 지대에서 오토바이를 잘 타는 사람들이나
오토바이로 겨우 넘어 가지 경운기는 일단 경운기가 지나갈 많큼 길이 넓지 못하고 도저히 가파른 산을
넘지 못하기 때문에 경운기로 가는 건 완전 불가능하였다.
불법으로 넘어 갔다가 시끄러울까봐 국경 도착 전에 나이 많은 이에게 안가고 내리겠다고 하니
그냥 있으라고 해서 할 수 없이 경운기는 국경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국경 통과 전에 오른쪽에 있는 태국 군인 검문소에 경운기가 멈추자 태국 군인 1명이 다가왔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여기서 내리던가 아니면 태국 군인이랑 눈이 안 맞추게
머리를 바닥에 푹 박고 있는 방법 밖에 없어서 짐에 기대어 머리를 바닥을 보며 숙이고 있었다.
태국 군인이 물건 산 영수증과 물건들을 대충 확인하고 통과 하라고 해서 이젠 무사히
도인 마을에 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국경을 통과해서 미얀마 땅으로 들어선 경운기는 잠시 국경에서 몇 가지 물건을 더 사고
완전 비포장인 거친 길을 달렸다.
미얀마 국경안에서 잠시 있는 동안 별 일이 없어서 다 끝난줄 알았는데
10분정도 인적 없는 나무가 우거진 산길을 달리다가 갑자기 경운기를 멈추었다.
길가 왼쪽 안으로 보니 군 초소에 총을 든 몇 명의 카렌 반군들이 보이자 난 또 머리를 돌려 바닥에 박었다.
속으로 이곳에 잘 못 들어와도 한참 잘 못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는 빼도 박도 못하는 곳이라
태국 국경에서 경운기에서 내리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고 한편으론 긴장도 되었다.
이곳에서 불법으로 넘어온 외국인으로 탄로나거나 하면 군부대로 가서 조사 받고
다시 태국쪽으로 추방되서 태국쪽에서도 조사받는등 시끄럽게 됐구나 하는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미얀마를 10여차례나 가고 1년에 1번 인도 국경쪽에서 하는 축제에 그룹으로만 허가하는 지역을
현지인 옷차림으로 단독으로 순회공연 하러 가서 군부대에서 2일간 밤새 총들고 보초를 서는 곳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땅 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자고 나온 경험도 있어서 일이 잘못되면 당당히 머리를 길게 기르는
도인들이 산다는 마을을 보고 싶어 가는 길이고 이 쪽길로는 모르고 들어왔다고 할 참이었다.
옆에 같이 앉아 가던 나이 많이 이가 내려서 왼쪽 길가 안쪽에 있는 군초소로 서류를 들고 달려가서
서류를 보여주고 돌아오자 경운기는 다시 힘차게 출발했다.
이제는 장애물이 없겠지 하고 무인지경의 주변 나무숲 경치를 감상하고 10여분 정도 가니
또 다시 경운기가 멈추었다.
이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머리를 바닥에 박고 있는 것 이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옆에 있던 나이 많은 이가 다시 서류를 갖고 내려서 길가 오른쪽에 있는 군초소로 향해 뛰었다.
잠시 후 나이 많은이가 오자 젊은 경운기 운전자는 재빨리 앞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이 미얀마 지역에서만 경운기로 2시간을 달려야 태국 지역이 나온다고 한다.
빨리 2시간이 지나기를 바라고 드문드문 전기도 없이 완전 원시 상태에서 사는 집들과
주변 티크나무들이 있는 무인지경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계속 나아갔다.
경운기가 달리는 중에 옆에 앉아서 같이 가는 나이 많은이가 자기는 전에 군인이었다고 하면서
튀어나온 내 반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복대를 호기심 있는 표정으로 여러 번 만지는 것이었다.
계속 만지면서 돈이냐고 물어서 난 여권이라고 말하고 미얀마말로 ‘빠사 머시부” 돈이 없다고
얘기해 주었다.
처음에는 경계하고 웃음도 없던 나이 많은이는 같이 경운기 뒤에 앉아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하고
이곳에 오기 전에 산 콩을 나눠 먹으면서 도착할 때 까지 웃으면서 갔다.
가다가 완전 오염되지 않은 개울을 몇 개 건널 때에는 내려서 세수도 하고 프라스틱 통에 물도 담았다.
1시간 넘게 달려 더 이상 검문도 없고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갑자기 30미터 앞쪽에서
20여명의 군인들이 철모를 쓰고 가슴엔 수류탄을 달고 완전 무장을 한 채로 흩어줘서
천천히 주변을 계속 살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우리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길 옆 안쪽이 아니라 경운기 다니는 좁은길과 좌우의 숲에서 완전 무장한 카렌반군들이
우리쪽으로 다가오고 있는것이 아닌가. 이젠 다 끝났구나 하고 다시 머리를 바닥에 박었다.
군인들은 우리 3명이 머리 기르고 사는 마을로 가는 줄로 알고 말도 안 걸고 좌우로 무엇을 살피듯이
한발 한발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이게 몇 번째인가… 벌써 4번째 숨죽이고 머리 박고 통과를 하고 가다가 가파른 언덕길이 나오면
나이 많은이와 같이 내려서 경운기를 밀고 해서 한참을 가니 작은 마을이 나왔다.
이 곳은 미얀마 지역으로 이곳도 머리 기르고 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곳에는 먼저 떠났던 경운기도 쉬고 있었고 나도 내려서 물도 마시면서 주변을 보니
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전기도 없이 완전 원시 상태로 살고 있었다.
10여분 정도 쉬고 다시 경운기는 출발하고 조금 더 가니 숲 곳에 작은 나무 팻말에 태국과 미얀마가 써 있었다.
작은 팻말을 보자 긴장이 풀리고 이제 안전한 태국땅에 들어서서 더 이상 불법 입국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2시간을 달려 미얀마 지역을 벗어나서 계속 달리니 작은 마을이 나왔는데 여기도 머리를 기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미야마쪽 보다는 생활이 나아 보였다
집들도 조금 더 괜찮아 보였고 마당에는 태양열판이 있어 전기를 이용해 전기기구도 사용하는 것 같았다.
경운기가 가면서 올 때 주문을 받은 물건들을 집 앞에 가끔씩 경운기를 멈추고 물건을 내려주면서 갔다.
경운기가 태국으로 들어와서도 1시간 반을 달려서야 목적지인 상점앞에 도착하니 주변사람들 모두
머리를 기른 사람들이었다.
비포장 산길인 미얀마 지역을 2시간 달리고 다시 태국 지역을 1시간 반을 달렸으니
3시간 반만에 머리를 기르고 사는 도인들 마을에 도착을 했다.
도착해서 싣고 온 물건들을 모두 내리고 태워다 준 2명에게 고맙다고 하고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
같이 온 2명과 주변에 있는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어린이등을 찍었다.
5시 반경에 도착을 해서 일단 오늘 묵을 곳으로 근처에 있는 절로 데려다 달라고 하고
경운기를 타고 가니 나를 데려간 곳은 이곳 마을 이장 정도 되는 집으로 안내를 했다.
50대인 이장은 큰 나무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오늘 밤을 이집에서 묵으라고 하면서
저녁을 먹으라고 해 배가 안 고프다고 괜찮다고 했다.
다시 한번 태워다준 2명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적은 성의로 태국돈을 쥐어 주었다.
처음에 한사코 안 받겠다고 거절 하길래 겨우 쥐어 보내니 이장집 13세 막내 아들이 날보고 따라 오라고
하더니 집 앞쪽 골목으로 좀 걸어가니 산 아래 동굴이 나오고 이 안에서 사람들이 명상을 한다고 한다.
주변에는 마실 깨끗한 물도 있고 산 아래 동굴 앞에는 나무가 우거져 땔 나무도 많고 살다가 떠났는지
쓸쓸한 빈 집 한채가 있었다.
이런곳을 보니 나중에 기회가 되 다시 오게 되면 텐트을 가져와 이 곳에 치고 몇 일간
조용히 지내면서 명상도 하고 사진도 찍었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이 일어났다.
13세 막내 아들은 나에게 따라 오라고 하면서 주변에 머리를 기르고 사는 여러 소박한 집들과
상점등 구석구석 안내하였다.
갈증이 나서 상점에 들러 쥬스 2병을 사 하나씩 나눠 마시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집 안에서 여러이 같이 자는 것보다 집 앞쪽에 큰 나무가 있어 그 나무 아래에서 자는게
더 편하다고 하니 머리가 짧은 34세의 아들이 바닥에 깔 돗자리와 이불과 초를 가져다 주었다.
나무 아래에 돗자리와 이불을 깔고 쉴려고 하니 34세 아들이 옆에 앉아 도를 닦는 듯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자기도 얼마 전까지 머리를 길게 길렀는데 전부 짤랐다고 하면서 보관중인 짜른 머리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바닥에 이불을 깔면서도 기계로 짠 이불은 안 좋다고 하고 이 이불은 손으로 짠거라 좋은거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들은 육식은 안하고 밥에 채소를 먹고 지낸다고 한다.
저녁 9시가 지나자 34세의 젊은이는 다시 앉아서 주문을 외면서 명상에 들어갔다.
1시간이 지난 10시경에 밤도 깊었으니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하니 자기도 내 옆에서 잔다고 한다.
춥지는 않고 선선해서 옆에 흔한 나무로 모닥불을 피우고 쏟아질거 같은 별들을 바라 보며
명상과 노숙을 하며 보낸 이 날은 준노숙자인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에게 너무나도 아름다운 날이라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날이다.
P.S 위에 사진은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를 위험을 뚫고 3시간 반 동안 경운기로 머리를 기른 도인들이 산다는
마을로 태워다 준 고마운 2명이다.
아래 사진은 머리가 긴 도인 마을에 경운기가 도착해 내려서 주변에 있는 어린이들을 찍은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