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충칭시 부시장 겸 전 공안국장 왕리쥔(王立軍)이 쓰촨성 청두시 주재 미 영사관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한 사실이 전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폭로사이트 위키리크스에 공개된 미국 정부의 외교 전문에 따르면 17차 전인대 전 당시 상무부장 보시라이(薄煕来)는 부총리가 되고자 했으나, 그가 벌인 파룬궁 박해로 미국을 포함한 10여 국가에서 고소되었음을 이유로 원자바오 총리 등에 의해 부결되었습니다.
보시라이는 향후 권력중추에 들어가 후진타오 세력에 대항하는 ‘상하이방’의 정치노선 계승을 바라는 장쩌민 전 주석의 기대를 받았으나, 상무부장 임기 만료 후 충칭시 서기로 좌천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보시라이는 충칭시 서기로서 가능한 한 여론의 주목을 끌기 위해 ‘조폭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라이벌인 전임이자 현 광둥성 서기 왕양(汪洋)이 재임 중 발탁했던 관리들을 체포, 처벌함으로써 라이벌을 견제하고 자신의 세력을 늘리려 했습니다. 그 일을 담당한 심복이 바로 랴오닝성에서 불려온 왕리쥔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보시라이의 움직임에 대해 후진타오 등은 처음부터 경계한 것으로 보입니다. 후-원은 보시라이의 ‘창홍타흑(唱紅打黒 홍가 부르기와 조폭과의 전쟁)’ 운동에 대해 한마디도 찬성의 뜻을 비친 바 없으며, 보시라이 취임 후 단 한번도 충칭시를 시찰한 적이 없습니다. 이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본다면 후-원의 태도는 분명해 보입니다.
지난해 말 중공 중앙기율검사위원회(중기위)는 왕리쥔을 소환해 그의 부패문제와 고문 등 사법남용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확실한 증거 앞에서 왕은 변명하지 못했습니다. 중기위는 왕에게 보시라이의 문제를 적발해 보시라이에 대한 조사에 협력하면 관대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암시하자 왕은 실명으로 보시라이의 부패문제 등을 적발했습니다.
왕의 배신을 알게 된 보시라이는 1월 4일에 왕리쥔과 회담하고, 2월 2일 충칭시 공안국장직을 면직했습니다. 보시라이는 또 왕의 운전기사 등 주변인사 19명을 체포하고 왕의 행동을 24시간 감시했습니다.
신변의 위험을 느낀 왕은 청두 미 영사관을 방문해 정치적 망명을 요구했으나, 이 사실을 알게 된 보시라이는 장갑차를 포함 70대의 순찰차를 이끌고 미 영사관을 포위한 다음 왕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한편 후진타오는 국가 안전부부장 등 7명을 급파해 왕을 베이징으로 데려왔습니다. 왕은 정치적 망명이 거부되어 미 영사관에서 나올 때에 국가 안전국 관리들에게 보시라이와 철저하게 싸우겠다고 외쳤습니다.
충칭시는 중국 중앙 직할시의 하나로 부시장 왕리쥔은 부성장급입니다. 중공 고위관리가 해외에서 정치적 망명을 요구한 사례는 있었으나, 부성장급 고위관리가 국내에서 미국 영사관에 정치적 망명을 요구한 것은 전례가 없는 매우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때문에 중국문제 전문가들은 중공 내부 투쟁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공개되면서 중공 중추부의 권력투쟁 균형이 이미 무너진 것으로 보고, 이 사건이 중공을 붕괴시키는 도미노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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