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톈량(章天亮 조지메이슨대 교수)
[SOH] 최근 신화사에서 지난 3월 26일 저우융캉의 발언을 뒤늦게 보도했다. 내용은 한 달 전 전국 정법위 서기 제1회 집중연수에서 그가 한 강화(講話)다. 주목할 만한 것은 저우융캉이 4차례나 후진타오를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더 긴밀하게 후진타오 동지를 총서기로 하는 당중앙 주위에서 단결하자'고 발언했다는 점이다.
외부에서는 지금 저우융캉이 후진타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연착륙’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저우융캉이 유화책을 쓰기에는 시기가 이미 너무 늦었다.
중공의 ‘노선투쟁’은 지금까지 모두 너 죽고 나 살기 식으로 격렬했으며 약한 모습을 보인 쪽이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과거 마오쩌둥이 류사오치(劉少奇)와 펑더화이(彭德懷)를 타도할 때 역시 그랬다.
마오쩌둥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던 사람들 중 유일하게 풀려난 사람이 바로 덩샤오핑이었다. 덩샤오핑은 당시 끊임없이 마오에게 충성심을 표시했고 또 ‘영원히 복권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마오쩌둥이 사망하자 덩샤오핑이 곧 복권되었고 마오의 부인 장칭과 조카 마오위안신을 전부 체포해 처벌 받게 했다. 공산당은 반면적인 교훈을 잘 얻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이런 일에서 ‘일단 사람을 다스리려면 죽을 때까지 해야 해. 그렇게 하지 않고 상대방을 살려두면 나중에 자신이 당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에 왕리쥔 사건이 발생한 후 보시라이가 후진타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며 ‘충칭모델’을 희석시키고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을 강조했다. 보시라이는 3월 13일 또 ‘후진타오 동지는 충칭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라고 아부했다. 그러나 이틀 후인 3월 15일 보시라이는 충칭시 서기에서 전격적으로 해임되었다.
최근 저우융캉이 많은 여론을 형성하고 나섰다. 그중에는 장쩌민이 베이징에 돌아와 군부 지도자들을 접견하고 보시라이 사건에 대한 처리방침을 결정했으며 또 ‘내가 아직 당신들 군사위원회의 수장이다’ 또 ‘당중앙에서 반역자가 나오고 투항주의가 나오고 암암리에 미국인과 교역하는 것은 주권을 잃고 나라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이는 은연중에 후진타오가 시진핑을 제거하려는 배후 책동자라고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이 소식이 나오자마자 국내외 많은 관찰자들은 거짓 정보로 일축했다. 우선 장쩌민은 이미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고 보도 중의 다른 설명 역시 중공 당내의 규칙과 결코 맞지 않기 때문이다. 후진타오가 이미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소식은 후진타오를 위협하기는커녕 저우융캉 일파의 ‘우마오(五毛 인터넷 댓글 알바)’들을 제거하고 이번 모반 음모의 총두목인 저우융캉을 제거할 결심을 부추길 뿐이다.
저우융캉은 지금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강한 모습을 보이자니 허장성세(虛張聲勢)임이 탄로날 터이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자신이 이미 철저히 실패했음을 표시할 뿐이다. 저우융캉의 추종자들은 절대다수 시류에 편승하려는 자들로 그들이 저우를 따르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이익을 얻기 위해서다. 지금 저우융캉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혹은 세력을 잃었다면) 그들은 곧 ‘우두머리가 무너지면 수하들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심지어 ‘우물에 빠진 자에게 돌을 던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저우융캉의 혈채방(血債幫) 역시 철저히 붕괴될 것이다.
정치국 위원에서 끌려 내려온 천시퉁(陳希同 베이징시 서기)이나 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 서기) 사건 때와 비교해보면 당시에는 군부의 태도표시나 중국 국내 매체의 대대적인 선전이 없었다. 지금 중공 군부가 빈번하게 후진타오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것으로 볼 때 그의 숙청대상은 단순히 정치국 위원 보시라이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융캉을 끌어내리는 것은 이미 피할 수 없는 추세가 되었다.
그러므로 저우융캉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기 수하들이 이탈 과정을 가속화시키는 것 외에 후-원의 어떤 결정도 바꾸지 못할 것이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