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지난 7일 중공 원로인 펑전(彭真)의 아들인 푸양(傅洋)은 리좡(李莊)의 체포 배후의 사정을 폭로했습니다.
보시라이가 베이징 변호사 리좡을 투옥시킨 지 두 달 후 시진핑은 베이징의 법률사무소를 조사했습니다. 이를 두고 푸양은 중공 지도자 역사상 ‘전례없는’ 조치라고 말했습니다. 논평가들은 중공 중앙 당국이 최고 권력을 인수하려던 보시라이의 시도를 오랫동안 알고 있었으며, 중앙과 보시라이간 투쟁이 오래 지속돼 왔다고 말했습니다.
보시라이가 리좡을 체포해 중앙에 도전하는 동안 시진핑은 법률사무소 조사로 맞섰습니다. 홍콩 재경망(財經網)은 캉다(康達) 법률사무소 대표 푸양이 7일 중국 변호사 모임에서 한 발언을 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푸양은 중국에서 변호사, 특히 형사재판 변호사들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한다면서 7개 사건을 인용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리좡 사건입니다.
푸양은 “2년 전 충칭당국이 (리좡) 변호사를 체포했을 때, 시진핑은 베이징의 법률사무소를 조사했다. 당과 국가 지도자가 법률사무소를 방문한 것은 1949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리좡은 캉다 법률사무소의 파트너들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2009년 충칭 당국은 ‘지역 조직폭력 두목’으로 지목한 궁강모(龔剛模)를 변호한 이유로 리좡 변호사를 1년 반 동안 수감했습니다. 이 사건은 중국 변호사회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2010년 1월 시진핑은 베이징에 위치한 더헝(德恆) 법률사무소를 조사하면서, 변호사들이 사회평등, 정의 그리고 안정을 증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치하했습니다.
리좡은 당시 투옥돼 있어서 외부세계와 단절됐기 때문에 자신과 시진핑의 법률사무소 조사를 연계시키지 못했다면서 “베이징에서 나비의 날개짓이 인도양에 쓰나미를 일으킨다. 우리는 그런 연계를 해독하지 못할 수 있지만 분명 그런 것은 존재한다. 즉, 어떤 현상은 수많은 원인이 모여 하나의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중국 예술연구원 학자 장야오제(張耀傑)는 “사실 보시라이에 대한 타격은 왕리쥔 사건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중앙 당국은 수년동안 준비해왔다. 그들은 리좡이 충칭에서 체포되기 전 타격할 준비를 해왔다. 시진핑이 법률사무소를 조사한 것을 보면 그는 간접적으로 변호사들을 지지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장야오제는 보시라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도 7인의 상무위원회에 진입했을 것이지만, 그는 더 많은 것을 원했다면서 “보시라이는 후진타오나 시진핑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믿었고 그런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리좡이 체포된 후 푸양은 보시라이가 자기 사람을 체포한 것에 굴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리좡사건이 보시라이와 중공 중앙당국간의 투쟁으로 발전하면서 보시라이가 우발적으로 리좡을 체포한 것이 중공 중앙을 향해 힘을 과시한 형태가 됐다면서, “보시라이의 과시 목표에는 푸양도 포함된다. 누구도 푸양과 트러블을 일으키려 하지 않지만 보시라이는 했다. 이는 게임과 같다. 보시라이가 공격했을 때 이쪽은 응수했다. 그것이 바로 시진핑이 법률사무소를 조사한 이유다”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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