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H] 최근 중국 장이머우 감독의 자녀 7명설과 정협위원을 지낸 기간에도 세 자녀를 낳아 ‘한 자녀 정책’을 위반했음에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데 대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에 대해 산시성 독립작기 두광다(独光达)는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장이머우는 탁월한 인물이며, 그는 장쩌민의 사람이다’ 그가 찍은 ‘영웅’은 장쩌민을 위해 찍은 것이며, 장쩌민의 파룬궁 탄압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강력한 배경이 있는데 누가 그를 처벌하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영화 ‘영웅’은 장쩌민 전 주석이 장이머우를 설득하여 그를 미화하기 위해 찍은 것입니다. 장쩌민은 진시황을 자신의 화신으로 형상화시켰기 때문에 영화 중 어떤 장면은 역사를 왜곡해, 진시황이 자객을 설득하여 형벌을 받게 하는 등 도량이 크고 관대하여 천하를 굴복시켰다고 하게 했습니다. 장쩌민은 3,000만불(약 340억원)을 장 감독에게 주고 영화촬영에 협조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영웅’은 지난 2002년 10월 14일 중공 인민대회당에서 개봉됐습니다. 이날 인민대회당에서는 엄격한 안전검사가 이뤄졌습니다.
같은 해 11월 22일 영웅 제작사인 베이징 신화면(新画面) 영화사는 댜오위타이(钓鱼台) 국빈관과 차이훙(彩虹) 제트기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초호화 제트기를 임대해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세 지역에서 열리는 영화 개봉시에 제작자를 제외한 영화 관계자들과 배우들을 참석케 했습니다.
‘영웅’ 제작자로 알려진 장웨이핑(张伟平)은 영화제작 경력은 일천하고 2001년에서야 본격적으로 활동했으며, 영웅은 2001년 8월부터 2002년 10월까지 제작됐습니다. 이 기간동안 장쩌민에게는 왜 ‘영웅’이 필요했을까요?
당시 장쩌민은 89년 정권을 잡은 뒤, 2002년 11월 중공 16차 당대회에서 다시 계속 정권을 잡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1999년 7월 중공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룬궁 박해를 시작해 민심을 잃었습니다. 정부와 민간 모두에서 ‘후진타오가 올라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렬했습니다. 장쩌민은 자신의 죄를 모면하기 위해 장이머우 감독에게 장쩌민판 ‘진왕(秦王)’을 찍게 한 것입니다. 장이머우 감독은 그 진왕이 진시황임을 인정하지 않지만, ‘중국 시안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 웹사이트와 영화 ‘영웅’ 중의 진왕에 대한 설명이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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